2025-05-30
연합뉴스
'동물과의 전쟁' 표지
[두번째테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비좁은 나무상자에 꽉 들어찬 닭들이 가공 처리 공장에 도착한다. 노동자들은 재빨리 살아 있는 닭의 다리를 잡아 꺼낸 뒤 한 마리씩 컨베이어 걸쇠에 거꾸로 매단다. 전기수조에 담겨 기절한 닭들은 빠르게 목이 잘리고 피가 빨린 뒤 깃털 제거 탱크에서 데쳐진다.
현대의 자동화된 닭 도살 과정은 모든 것이 신속하고 순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당사자인 닭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고통의 터널이다.
컨베이어 걸쇠에 잘못 꿰어지거나 전기수조에서 기절하지 않고 의식이 있는 상태로 목이 잘리기 일쑤다. 목이 잘리지 않아 깃털 제거 탱크에서 산 채로 삶기는 고통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뉴질랜드의 인간·동물 연구 센터에 따르면 영국에서만 시간당 50마리의 닭이 의식이 있는 채 목이 잘리고, 1천마리 중 9마리의 닭들은 뜨거운 탱크에서 죽음을 맞는다.
호주의 동물 권리 운동가인 디네시 와디웰 시드니대 교수는 신간 '동물과의 전쟁'(두번째테제)에서 이 같은 자동화 도살 공정의 민낯을 통해 동물에 대한 인간의 폭력적·파괴적 지배 욕구를 파헤친다.
저자는 한 해에 약 550억 마리의 닭을 가공하는 자동화 도살 공정을 두고 '종국적 절멸에 맞서 저항하는 동물을 고문으로 진압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생물의 한 종에 불과한 인간이 다른 한 종의 생물을 단지 식량으로 활용한다는 이유로 멸종에 가까운 살육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책에서 인간과 동물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선언한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믿어온 수천 년의 지적 전통과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인간 주권' 논리가 동물에 대한 착취와 살육을 가능하게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생태계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갖게 된 것은 동물을 지배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발적인 역사적·생물학적 조건 덕분이라고 꼬집는다.
전통적인 동물권 담론의 한계에도 주목한다. 동물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보거나, 개와 고양이 등 인간과 가까운 동물에게 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려는 입장은 편협한 '종차별주의'(speciesism)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또 '힘이 곧 권리'라는 '인간 주권'의 논리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폭력적 지배의 정당화 도구로 작동해왔다고 주장한다. 동물을 상품화하고 노동력으로 전유하며 소비하는 구조가 노동자와 소외된 인간 집단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 주권'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인간과 동물이 함께 기나긴 '전쟁'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꽃씨 옮김. 464쪽.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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